18-08-13 14:56 조회 1,125회
내겐 고마운 암
글_장선아
누구에게나 암이라는 병이 고마울 리 만무하다. 나 또한 처음 에 그랬다. 암 선고를 받는다는 것은 곧 시한부인생을 산다는 것쯤으로 여겼었다. 삶의 의욕상실은 물론 그냥 인생의 종지부 를 찍는다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암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진정한 감사의 깨달음은 품지 못했을 것이 다. 암은 그런 의미에서 삶의 기회인 것이 분명하다. 암은 삶 을 얼마나 소중히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훌륭한 스승이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거울이며, 앞으로 또 얼마나 잘 살아야 하는 지를 안내하는 인생 이정표다. 적어도 나에게 는 확실히 그렇다.
머릿속이 갑자기 텅 빈 듯 했다. 암이란다. 문득 가슴부위를 만 져보다가 손끝에 딱딱한 멍울이 느껴졌다. “설마 아닐 거야”를 몇 날 며칠 되뇌다 인근의 한 유방외과를 찾아 정밀진단을 해보 았다. 빨리 큰 병원에 가보란다. 그 선생님은 “모양이 그리 나 쁘지 않다”고 내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 리가 들리지 않았다. 곧바로 경북대학교병원 유방외과를 찾았 다. 2010년 1월이다. 좀처럼 긴장된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 다. 접수를 마치고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 몇 분이 내게는 여삼 추 같았다. 제발 큰 악성이 아니길 바라고 바랬다. 처음 진단이 오진이었으면 하길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진료실에서 처음 만난 의사선생 님의 모습은 나를 어느 정도 안심시켰다. 온화하면서도 차분하 게 일러주시는 수술계획을 들었다. 수술이 밀려 있어 금방 날 짜가 잡히지 않았다. 병원에서 수술할 날짜를 알려주기까지의 그 며칠도 내겐 하루하루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드디어 수술하자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기다리던 소식이긴 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구나.”하면서 두려웠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취가 깨면서 터질 것 같은 두통, 울렁 거림, 한기를 느꼈다. 그런 느낌 한편에 “아~ 무사히 수술을 마쳤구나.” 하는 안도의 생각이 들었다. 진통이 곧바로 시작되 었다. 달아놓은 진통제는 소용없었다. 진통주사를 거듭 추가
하여도 아픔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프겠지 하는 짐작은 했어도 이토록 고통스럽게 아플 줄은 몰랐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 치더라도 “오늘만 잘 버티자. 조금만조금만 더” 하면서 나 스스로를 다스리던 의욕조차 그런 고통 앞에서 꺾일 때도 많았다.
나는 병원을 전적으로 믿었다. 내가 이미 병이 들어 있는 상황 을 되돌릴 수도 없는데, 그런 병을 끝까지 치료해줄 곳은 병원 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병원에서 하는 말 한마디부터 병원복도 게시판에 붙여진 종이 한 장까지 모두 잊지 않으려 했 다. 메모도 그 때부터 제대로 시작된 습관이다. 운동을 시작하 란 권유로 이를 악물고 우선 걷기 시작했다. 이왕 맞이해야하 는 것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자싶어 더 열심히 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둔 팔운동법도 실천하려 애썼고, 마음 도 밝고 긍정적으로 가지려고 무던히 애썼다. 본능적으로 살고 자하는 마음으로 그랬을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런 고통이 없었더라면 나의 살고자 하는 오기가 그처럼 발동하 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퇴원을 했다. 퇴원 후에는 가족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나 름대로 열심히 책을 보면서 암치료정보를 습득해갔다. 예전에 익숙했던 습관 속에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골라 버렸다.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일상의 작은 것들이 그렇게 소중한 것임을…
그런데 수술부위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 는가 싶더니 항암요법과 방사선요법 치료 차례가 돌아왔다. 항 암주사는 처음 한 번 맞았는데도 바로 심한 구토가 났다. 음식 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40도를 웃도는 고열로 1주일가량을 헤매기도 하고, 심각한 두통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3주 차가 되어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도 있게 되고 미음이라도 조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치료는 더 심했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던 긴 생머리가 힘없이 푹푹 빠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오 열을 했다. 섬뜩하고 무서웠다. 짐작은 했지만 직접 내 눈으로 빠진 나의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은 엄청난 낯설음이었고, 허무 함이었다. 입과 피부점막은 군데군데 헐기 시작했고, 백혈구 수치도 위험수준까지 갔다.
가발을 눌러 쓰고 혼자 매일을 동네 산에 올랐다. 흰쌀밥만 즐 기던 주식은 현미로, 좋아하던 육류는 생선, 두부 반찬으로 대 체하고, 나물류는 즐기지는 않았지만 섭취 비율을 늘이는 노력 도 같이 했다. 과일과 뿌리채소는 되도록 깨끗이 씻어 껍질을 함께 먹었다. 이어서 받게 된 방사선치료에서는 1도 이상의 화 상에 시달렸지만 정성들여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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